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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고 싶어서

레이저 제모 후기

by 두덩 2017. 4. 11.

이벤트 하길래 가서 지졌다
다섯번에 22000원 굉장히 싸다. 그래서 갔다.

면도하고 오라고 그래서
어젯 밤에 깨끗하게 샤워하고 겨드랑이털을 밀었다
매끈한 겨드랑이가 됐다

아침이 밝았다
씻기 싫다
물 한 잔 마시고 세수하고 가글하고
모자를쓰고 마스크를 했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라 버스타고 갔다

가는길에 어떤 아기가 참 귀여웠다
나도 귀여웠으면 좋겠다

병원은 컸다
나랑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카운터에 있더라
인사하고 싶었는데
괜히 어색할까봐 참았다

첫 방문이라고 그뭐냐 차트뭐 썼다
내신상..
며칠 전에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그런지
주민등록번호를 쓰는데 막힘이 없다

그리고 기다렸다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니
예쁜 언니가 내옆에 앉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또 얌전히 앉아서 기다렸다
들어오라고했다
어떤 방에 들어갔다

나시입고 누으라길래
나는 에어리즘을 입고왔노라 당당하게 얘기했다
간호사님이 허락해주셨다

침대에 누워있느니 뭐랄까
무섭다
의사선생님의 성별을 물어보니
그 병원 선생님들은 다 남자랜다
그렇군

또 얌전히 누워있었다
갑자기 만세를 하라고 했다
겨드랑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부끄럽다

레이저라 눈을 가려야한다며 울트라맨같은걸로 내 눈을 덮으신다
때마침 의사선생님이 등장했다
나는 그의 소맷자락조차 보지 못한 채 눈이 가려졌다

선생님은 안녕하세요도 안해주셨다
서운했다
선생님은 말없이 레이저를 쏘셨다
앗 따끔
그치만 난 층간소음에도 몇년째 잘 참고있는
참을성 넘치는 사람인지라 열심히 참았다

오른쪽 겨드랑이 왼쪽 겨드랑이
5분 정도 걸렸으려나
굉장히 빠르게 끝났다

선생님은 끝났다는 말도 안해주시고 그대로 사라지셨다
그리고 내 눈에 있던 울트라맨은 벗겨졌다
아이 부끄러워라

나는 의사선생님의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얼굴도몰라요 뭣도몰라요
내가 아는건 남자라는 사실 뿐

생각해보니 친절하게 말걸어주셨으면
더 민망했을 것 같다
의사선생님의 깊은 뜻이 느껴진다

끝났다
옷을 주섬주섬입고 방에서 나왔다

그냥 그대로 병원을 나왔다
결제는 아까 신상쓰고 난 후에 바로 했다

집에 오면서
친구한테 후기를 말했더니
의사선생님은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퀘스트깨는 것처럼
한 명씩 해치우러 다니는 것 같다고 그런다
격하게 공감했다

겨드랑이가 시린 계절이다
올해는 만세를 자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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